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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 개
    사무장  작성일 2014.05.14  조회 116     

검둥이 개

(부활 제4주일)

                                                                                                                                                                                                        방삼민 신부

     

  성당에 검둥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떠돌이 개였던 검둥이는 넓은 성당 마당이 마음에 들었던지 언제가부터 아예 성당 마당을 자기 집 삼아 활보할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동네 마실을 나가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성당에 들어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한다.

  평소 아이들이나 교우들이 먹이를 주면 잘 따르기도 하고 사람 앞에 와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숙이기도 하지만 결코 사람들 품에 안기지는 않는다. 먹이로 꾀어 보기도 하고 온갖 짓을 다 써 보아도 근처 일 미터 앞까지만 허용할 뿐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면 금방 달아나 버린다.

성당에 들어와 산 지가 벌써 몇 해나 되었고 새끼까지 낳았지만 그 버릇은 여전할 뿐 아니라 심지어 새끼를 낳을 때도 정성껏 지어준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비가 퍼붓는 가운데 성당 뒷산 수풀 속에서 새끼를 낳았다.

검둥이의 머리 속에 사람에 대한 상처가 기억되었는지 아뭏튼 검둥이는 성당에 살면서도 마지막까지 ? 언젠가 갑자기 소식이 없어질 때까지 ? 성당의 한 식구는 되지 못했다.

왠지 어리석은 강아지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검둥이가 야속하기도 했다. 사람 뿐 아니라 사람과 강아지 사이에도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자신의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것 같다.

     

  해마다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이 되면 성경의 양과 목자에 대한 비유가 소개된다.(요한 10.1-  ) “목자는 앞장서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요한 10.2-4)

     

  검둥이에게 성당 사람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가끔씩 먹을 것을 던져 주기도 하고 잘 곳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검둥이에게 성당은 영원히 자신의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이라 여기기보다는 자신이 필요할 때 먹이도 얻고 쉴 곳도 제공해주는 기회의 땅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성당 마당을 배회하면서도 언제나 바깥세상이 더 즐거웠던 검둥이, 성당 사람들의 친절에도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던 검둥이 개는 어쩌면 주님을 목자라 칭하면서도 온전히 자신을 맡기지 못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주일마다 미사를 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생활은 세상의 것에 더 맛들이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검둥이와 가까워져 보려고 먹이를 주고 쓰다듬으려 하면 그저 먹이만 받아먹고 금방 도망가 버리는 녀석을 볼 때 마다 나도 미물에게 바람맞은 서운함을 느끼곤 했다.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걸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마음이야 어찌 비할 수 있으랴. “목마르다”(요한 19.28) 하신 주님의 눈길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그 분의 부르심에 온 몸과 마음으로 응답하는 양, 아니 강아지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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